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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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마(李濟馬) 본관 전주(全州), 호 동무(東武), 자 무 평(務平), 함남 함흥 출생. 1888년(고종 25) 군관직에 등용되었으나 이듬해 사퇴하고 1892년 진해현감이 되었다. 그러나 다음해 사직하고, 1896년 최문환의 반란을 평정하여 고원군수로 추천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주역』의 태극설인 태양ㆍ태음ㆍ소양ㆍ소음이 사상(四像)을 인체에 기질과 성격에 따라 인간을 4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그에 적합한 치료방법을 제시한 사상의학(四像醫學)을 창안하였다. 저서로는『동의수세보원』,『격치고』등이 있다.
임언국(任彦國) 한 노파로부터 침술을 배워 어머니의 지병인 종창을 고쳤다. 이 침술로 많은 성과를 거두어 예빈시주부에 기용되었다. 저서에『치종비방』이 있다
전순의(全循義) 3 대(代)를 이어 전의감(典醫監)의 의관을 지냈으며 1445 년(세종 27) 왕명을 받들어 김문(金汶) ·신석조( 辛碩祖)·김수온(金守溫)등과 더불어 『 의방유취(醫方類聚) 』365 권의 편찬을 완성한 데 이어 1447년에는 김의손(金義孫)과 함께 『 침구택일편집(鍼灸擇日編集) 』 을 엮었다. 저서로는 『식료찬요(食療纂要) 』 가 있다.
정약용(丁若鏞)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은 18세 기 중엽에서 19 세기 전기까지 급변하는 국제 사회의 변동 속에서 방대한 저술을 통해 자기의 이상을 펼쳐 보려 했던 대표적인 실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정예남(鄭禮男) 본관 온양(溫陽). 자 자화(子和). 호 서주( 西疇). 1596년( 선조 29) 상의원(尙衣院) 주부를 지내고, 1608 년(광 해군 즉위) 시의(侍醫)로서 첨지(僉知)중추부 사가 되었다. 의학에 밝아 허준(許浚)·정작(鄭)·양예 수(楊禮壽) ·김응탁(金應鐸)·이명원(李命源) 등과 함께 『 의방신서( 醫方新書) 』 의 편찬에 착수하였으나 1597 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중단되었고, 『 육가잡영(六家雜 詠) 』 에 그 시(詩)가 전하며 저서로 『 서주유 고(西疇遺稿) 』 가 있다."
초삼ㆍ초객 형제 단성면 자양리 출생의 양천 허(許)씨로 형인 초객 허영은 전통의학의 달인으로서, 그리고 아우 초삼 허 언은 신의 경지에 다달은 침술로 이름을 떨쳐 중국의 화타(華陀)와 편작(偏鵲)에 비유되었으며 초객장 등 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허임(許任) 본관 하양, 침구에 뛰어나 선조 때 임 금을 치료한 공으로 동반(東班)의 위계(位階)를 받았다. 1612 년(광해군 4) 허준과 함께 의관록(醫官錄)에 기록되고, 1616년(광해군 8) 영평현령(永平縣令)에 임명되었으며, 다음해 양주목사(楊州牧使), 부평부사(富平府 使)를 거쳐1622 년(광해군 14) 남양부사(南陽府使)가 되었다. 조 선에서 으뜸가는 침의(鍼醫)라는 평을 받았 다. 저서로는 『침구경험방』,『동의문견방』등이 있다."
황도연(黃道淵) 호 혜암(惠庵). 본관 창원(昌原). 철종 때부터 서울 무교동에서 개업하여 명의로 이름을 떨쳤고, 여러 가지 의서를 저술하여 의학의 대중화에 공을 세웠다. 저서로 『본초부방편람』,『의종손익』,『의방활투』,『방약합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