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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의회 회의록

Sancheong Gun Counc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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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회 산청군의회(임시회)

시천·삼장양민학살사건진상조사특별위원회회의록

제4호

산청군의회사무과


일 시 2000년 3월16일(목)

장 소 시천면사무소 회의실


  1. 의사일정
  2. 1.시천·삼장면양민학살사건진상조사청원의건

  1. 부의된 안건
  2. 1.시천·삼장면양민학살사건진상조사청원의건

(10시30분 개의)

○간사 서봉석   유족회에 오신 분이 2, 3차회의에서 못뵌 분들이 상당히 오늘 많습니다. 
그래서 여기 간사로서 말씀을 드리면 우선 본인이 관계되시는 분이 유족회명단에 들어있는가, 들어 있지 않은가 그것을 확인하시려면 이 증언하고 관계없이 유족회 회장님과 총무님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가지고 확인하시면 되겠고, 방금 전문위원이 말씀드렸는데 그 부분은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인 증언을 가지고 오신 분이 있다면 그분은 계속해서 4차 회의에서 유족회 증언을 들은 것으로 하고,  만약 진주 MBC TV 민원실이라든가 울부짖는 원혼에 나온 그런 내용에 이미 증언을 하신 분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중복되는 것은 양해해 주시고 나중에 회의가 새로운 증언이후에 유족회측에서 물론 회장님과 총무님 몇 분이서 대표가 되겠습니다마는 저희 조사반에 요청할 사항이 있으면 나중에 건의사항 형태로 말씀해주시고 마지막에 조사반을 대표해서 삼장면 선거구 조종명위원님께서 전체적인 흐름을 말하고 또 향후 일정에 대해서는 전문위원이 이후 조사활동, 특위활동이 끝나더라도 그 이후의 여러 가지 일정에 대한 말씀을 드리는 그런 순서대로 진행을 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증언하시기 이전에  새로운 증언자께서는 본인의 이름과 살고 계시는 마을과, 현재 나이를 분명하게 말씀해주시고 증언해주시면 고맙겠고요, 바로 위원들이 질문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마이크를 사용해서 질문하고 나서 답이 바로 나올 수도 있지만 마이크 대고 답변해 주시도록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조사반장 조종명   오늘 회의진행을 원활하게 하고 미리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말씀하자면  회의개의 상정하기 전에 우리 전문위원하고 간사위원하고 2분이 미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오늘로 4차 회의가, 우리가 조사활동 나와서 한지가, 그래서 4차 회의를 지금부터 시작하는데 다른 말씀은 안 드리겠습니다.  이미 2분이 설명을 드렸기 때문에 미리 설명드린 것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지난번에 안 오신 분이 오늘 많이 오셨기 때문에 참고로 하도록 하기 위해서 미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회의는 일단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오늘 목적은 지금까지 조사활동을 해왔는데 유족이 이라는 분이 빠진 분도 있고 또 보탤 분이 있는지 이러한 것을 조사해가고 확정을 지우고 진상중에 더 새로운 자료가 있으면 찾아내기 위한 이런 목적으로 오늘 회의가 열렸습니다.  
  우선 여러 가지 의정활동에 바쁘신데도 위원되는 4분 위원님, 연일 너무 고생을 많이 하시고 또 관심을 갖고 진상을 확실히 해 가지고 말하자면 사명이랄까, 애매한 것을 풀어주는 노력을 위해 농번기가 시작되어 바쁘신 중에도 불구하고 여러 유족회이거나  관계되는 분들,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러면 먼저 조금 전에 간사위원이 말씀하신대로 지금부터 우리전문위원이 보고를 드린 내용에 대해서 꼭 이 말은 보태야 되겠다하는 것이 있으면 말씀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소별로 조사된 것이 있다든지, 명단이 어느 정도까지는 있는데 완전무결하지는 못합니다. 그 외 더 아는 것이 있다거나, 숫자를 더 아는 것이 계신다든가 날짜나 상황을 더 확실히 더 아시는 분이 계시면?
○유족회장 정맹근   지난번에도 다른 얘기는 있습니다마는 조금 전 전문위원 말씀하신중에 방화사건, 가옥에 불을 지른 사건에 대해서는 빠져 있기 때문에 그 부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7월22일 덕산초등학교에 사람을 모아 가지고 원리 뒷산에서 죽인 그날 7월22일 아군 점령지역 밖에 있는 상부5개리, 말하자면 아군의 영향권이 미치지 않는 지역은 전부 불을 지른  상부 5개리 가옥은 불을 지른 그런 사항이 있었습니다.  
○조사반장 조종명   원리에서 사람을 학살하고 그 날짜로 상부 5개 리는 거의 다 방화했다.
○유족회장 정맹근   네.
○증인 이통주   전문위원 말씀하신 중에 한 가지 더 제가 생각할 때 미진하다, 잘못됐다 싶은 것은 없습니다.  법으로 정당하게 해석하면  밖에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장에 첫 번째 조사할 때 10명이 되었는데 그 뒤에 사람들한테 들으니 숫자가 많다, 그렇게 하시는데 그것은 맞습니다.  말씀하신 것이.  맞는 이유는 삼장에 있는 조의원님도 여기 나와 계시지만 제일 첫 번째 발간될 때 아까 번에도 들미겼습니다마는 하호은씨라는 그분이 와 가지고 우리가 국가에다 진정을 해보자, 그럼 통주 네 이름하고, 내이름하고 대표로 해 가지고 국방부에 진정을 한께내 다음에 만약 물어보거들랑 네가 도장찍어주었다고 해라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해보이소. 그래 이 분이 서울 올라가서 기안을 해 가지고 내 도장을 파 가지고 찍어 가지고 보냈더라고요.  며칠 있으니까 내한테 회시가 왔더라고.  그래 놓으니까 회시온 것이 우리집에 있을 것입니다.  몇번 온 것을 모아놓고......
○조사반장 조종명   모아놓은 것을 갔다 주이소.
○유족회장 정맹근   다 있습니다.  
○전문위원 송귀준   이 부분은 유족회에서 자료를 갖고 있는데 거기에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계시는 하호은씨라는 분이 탄원서를 넣었습니다.  89년8월8월 국방부장관, 93년 6월4일 대통령비서실에,  합동민원실에서 왔고,  94년 5월17일 검찰총장, 94년 7월16일 국방부장관, 98년 4월30일 국민고충처리위원회, 98년 5월1일 감사원장, 98년5월7일 국회의장, 98년5월11일 거창사건 관련명예회복심의위원회 회장, 98년 6월9일 국방부진상조사 및 책임자처벌 유족명예회복에 대한 진정 이런 정도의, 날짜는 그 해당기관에서  회시온 그 것입니다. 
  제가 자료는 유족회에서 준 자료는 제가 일단 한번 훑어봤고 정리를 했어요.  여기 이 내용도  그렇습니다.  국방부에서 산청과 거창사건등에 관한 법률 입안문제가 거기와 같이 처리하는 것으로 검토한다면 우리가 협조해주겠다,  그 뒤에 거창사건이 되고 나니까 그와 같은 법으로 하면 우리는 해주겠다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이 부분이 언급 안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전부 유족회측에서 낸 자료는 일단 훑어봤고 내용은 어떻든간에 여기서 곤혹스러운 부분은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는 얘기이고 거기서...... 
○증인 이통주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아까 번에 말씀하신 중에 이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밤에 짐져 주고 있으니까 뒷날 군인한테 맞아 가지고 골병든 사람이 있다, 그것은 시천면에 하나둘이 아닙니다.  삼장에 몇 사람이 안되었는데 그 뒤에 몇 사람한테 들으니까 숫자가 많다 하는 얘기를 했는데 방금 말했습니다마는 하호은이하고 첫 번째 진정을 내고 나서 회시가 내려오고 나서 산청경찰서 형사들이 내한테 찾아왔더라고. 덕산다방에 앉아서 얘기를 했는데 어떻게 해서 진정서를 낸느냐고, 그래, 쭉 경위를 얘기를 했는데 그 당시에 시천사람들은 저녁 되면 집이 정때 쌀 조금씩 있는 것을 울타리밖 풀밭에 갔다 숨겨놓고 있다가 빨갱이 내려오면 첫 먼제는 시천에 쌀 하나도 없앴다가 두들겨맞은 사람이 있어요. 내일 아침에는 뭘 먹을 것이냐, 이렇게 해서 그 다음에는 촌 사람들이 조금 남겨놓고 갔다 주었어요.  내일 아침에 이것은 우리 먹을 것이다.  그러면 찾아가 버리고.  
  짐을 져다달라 하면, 이것은 우외 소리하는 것입니다마는 안 져다줄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 뒷날 시천에 있는 경찰관들이 군인들이 와서 두들겨 패고, 짐져다 주었다고.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만 시천지서에 돌을 져다가 시천면민이 한달인가 두달인가 담 다 쌓고, 밖으로는 대 베다가 울도 다 막고.  그래놓으니까 자기네들은 밤새도록 들어앉아 있다가 아침 낮되면 짐을 져주었다고 두들겨 패고, 잡아가고 그때 시천면에 이장은 2년만 하면 논 두마지기 팔아먹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말은 어색하고 오래되어서 법적으로 책임질 일은 없습니다마는 그때 형사들이 부락에 나오면 닭잡고, 술 받고 하는 것이 일입니다.  그런 세월을 넘기다가 정보과 형사들보고 그랬어요.  어떻게 해서 그 사람들을 뺄갱이라 하느냐, 아까번 말하지 않았습니까? 뺄갱이라 하는 사람들은 공산주의라는 책을 보고 공산주의자라는 어구를 아는 사람이 몇 안됩니다.  기역자도 모르고 쎄빠지게 일하다가 공산주의가 좋다, 공산주의가 똑 같이 부자되고 똑같이 산다 이렇게 하니까 따라서 협조한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학교에서 3연대가 데려와서 두들겨 패고 죽이는데 이것저것 묻거나 모두 눈감으라 하고 지금 남로당 이런 것은 뭣하는 당인지도 모릅니다만 남로당 가입했느냐 물으니까 우리는 남쪽이니까 남로당에 가입했다면 괜찮을 것이다 해서 가입했다 해 가지고 죽은 사람이 많습니다.  
  많은데 방금 말한대로 한없이 어려운 것이고 좋게 하려면 말도 안 해야 되는데 우리가 남북통일을 하려는 마당에 이제 와서 과거 누가 잘했다, 못했다, 40년, 50년이 넘은 일로 그런 일을 지금 와서 분별하자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산청서 여기까지 오셔 가지고 욕도 보시고 면장님도 계시고 하는데 우리 시천에는 유족들이 이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유족들이 계시지만 간단히 말씀드리면 거창사건은 사건이 나고 난 이후에 희한했습니다.  신원면인가 면장을 두들겨 패서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 뒤에 그집 아들이 커 가지고 이것을 고소해놨다는데 결론이 났는지 내 아직 소문은 안 들었습니다.  산청금서는 금서사람이 1개인이 오래된 일인데 그때 돈으로 개인이 몇백만원 희사를 하고 고생을 했습니다. 우리는 억울하다. 발라내놔라.  그리고 금서 사람은 제복을 구해 가지고 몇 사람들은 차를 구해 가지고 제복을 입고 달라들고 이렇게 했습니다. 
  우리 속담에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가 울어야 젖을 준다고.  시천면 유족들이 면장이 해줄 것입니까, 의회가 해줄 것입니까?  유족들이 서둘러서 이것을 국가에서 밝혀내라, 해도 밝혀줄똥말똥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누가 해주기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나도 처음 일바실때는 내도 일도 못하고 돈도 제법 쓰고 그랬습니다. 누구한테 썼다는 것은 없습니다마는  그랬는데 방금 말씀하신 것이 일리가 하나도 그른 것은 없습니다. 
  그 다음에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 근방에서는 아는 사람이 한정없이 많은데 아까번에 설통바위 3연대군인이 40명이니, 37명이니 그날 그 사람들이 누가 거기 가서 세어보고 37명이다, 40명이가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옆에 사람을 죽이는데 누가 거기 가서 세어볼 사람도 아무도 없고 40명이다, 37명이다 하는 것은 배끼 중간에 말을 지어낸 것입니다.  군인이 2차 탔으면 대충 짐작할 것이고 죽은 사람 세어볼 사람은 없는 것이고 대충 얼마 죽었다 하는 것이지 몇 명이다 하는 것을 누가 지금 단정을 할 것입니까?  몇 해전에도 회의한다고 앉아 있으니까 누가 와서 30몇명이다 했는데 어떻게 30몇명인지 알 것입니까? 
  그리고 정보과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정보과라는 말이 나고 난 이후에 항도일보라는 신문기자가 몇 번 찾아와서 한번 만났습니다.  그래 가지고 재규 면장할 때 면장실에 앉아서 쭉 얘기를 하고 야, 밑에 가서 사진을 찍어 가지고 신문에 그때 한 쪼가리 났는데 3연대정보과라는 것을 어디다 채려놨는고 하니 옛날 시천지서일대 밑에 왜정때 우리가 어렸을 때라 몰랐는데 산업조합터라는 사무실 창고가 큰 것이 있었습니다.  산업조합터 거기다 사람들을 시천, 삼장, 단성, 옥종 일부 전부는 정보과에서 가두었습니다.  가두어놓고 그 사람들은 남명선생묘소 밑으로 그위 골짜기에도 많이 직였다 하더만 그것도 나도 직였다 소리는 듣은 것이고 내가 눈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그때 내가 거기 지나가도 직이려고 데려가는 사람을 세고, 어느 누가 쳐다 볼 사람은 없습니다.  저 죽을까 싶어서.  그러니까 그 3연대라는 것은 정보과라는 것은 경찰서 정보과가 아니고 지금 사람들이 희한하게 박남수라는 사람이 오래 사는 사람같으면 지금까지 살아있을 것인데 그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사람이 3연대 정보과에서 경찰서 직원하나 데리고가 기용을 했는데 당신네들이 이 지역을 잘 아니 협조해달라 그렇게 해서 따라 다리면서 아까번에 말한 것 있지 않습니까?  감정적으로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다, 이럴 수도 안 있겠느냐.  사람이기 때문에.  박남수 그 분이 그 당시에 다니면서 아마 사형언도는 그 사람이 얼추 다 내렸을 것입니다.  3연대 대대장이 뭘 압니까? 모르지요.  객기에 와서.  자기네들 부하가 많이 죽었으니까 성은 잔뜩 났겠지만.
  시천사건은 방금 말씀하신 다 그대로 누가 며칠 날, 몇 명 죽었다 하는 것은 모를 것 아닙니까?  
○조사반장 조종명   말씀하시기 전에 원통하고 억울한 것은 우리가 다 압니다.  그것이 지금 어찌 보면 같은 말을 자꾸 하다보면 회의 진척이 없는데 일단 그 사항들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라고 보고 거기에 꼭 넣어야 될 그런 사항, 다른 얘기 증언해야 할 것 이런 것을  말씀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안되면 회의가 결론이 안 납니다. 
○전문위원 송귀준   거창하고 산청, 함양사건은 조금 다릅디다.  제가 챙겨본 바로는 어떻게 다르냐 하면 신천국민학교 3연대는 여자가 포함되었습니다.  나머지 아이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쪽 가현, 방곡, 점촌, 유주골에서 있었던 거기 사건은 아이는 아이에서부터 남자, 여자구분이 없습니다.  서주는 좀 가려냈습니다.  위에는 나오는 사람은 무조건 다 쏴죽였습니다.  여기에서는 사람들은 모아 가지고 좀 가려내 가지고 살해했고, 저기에서는 동내사람을 싹 불러내 가지고 아이도 왔고 어른이고 구분없이 다 쏴죽였습니다.  그래서 조금 차이가 납니다.  거창사건하고.  저쪽 사건은 동일한 사건으로 동일한 부대가 그 당시 국회에서 문제가 되어 가지고 실형을 받고, 이쪽의 사건은 좀 더 빌미를 줄 수도 있고, 그 쪽은 빌미를 줄 것이 거의 없다 이런 것이 조금 있고, 노력의 강도도 차이는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좀 이해를 해주셔야 되겠습니다. 
○간사 서봉석   편의상 지역 어른이지만 제가 조사하는 입장에서 증인이라고 불러도 양해해주십시오.  기록상 그러니까 이통주 증인께서는 산림조합터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증인 이통주   알고 있지요.
○간사 서봉석   그러면 나중에 현장촬영 나갈 때 도와줄 수 있습니까?  사진을 찍어야 되니까.
○증인 이통주   도와줄 수 있지만 산림조합터라는 것이 그 당시 산림조합터라는 것이지 많이 달라졌습니다.  둑을 메고, 담을 쌓고.
○간사 서봉석   당시 터를 말합니다. 
○증인 이통주   알고 있지요.
○전문위원 송귀준   아까 제가 말씀을 안 드렸는데 서위원이 상당히 고생을 하셔 가지고 국방부 자료를 우리가 어제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그 자료를 보면 시천, 삼장 사건은 나타날지 모르겠습니다.  서류를 어제 가져왔는데 현재 보지는 못했는데 현재까지는 우리 서위원하고, 조위원님께서 고생을 대단히 했습니다.  
  서위원이 자기 친구 인맥을 동원해서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그 결과를 봐야 우리가 공식적인 자료에 그 당시에 양민을 학살했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시천 삼장에서 공비를 얼마나 처형했다 이렇게 나올 가능성이 있고요.  그러면 거기에 안 나타나면 찾아낼 길이 없습니다.  거기에 나온다면 비정규전에서 공비를 얼마나 처형했다 이렇게 나올 것입니다. 
○조사반장 조종명   유족회 회장님, 유족회 명단 받은 것을 가지고 물어봐서 첨가할 사항이 있습니다.  대충 어느 장소, 이런 것은 나오는데 확실한 숫자는 모른다.  혹시 유족이 더 발견될 분이 있는지 오늘 오신 분중에서...... 
○유족회장 정맹근   사망일자나 사망장소가 불분명해서 현재 제출된 유족회 명단에 탈락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하고 누락된 분들이 있는가 챙겨 가지고 제출하겠습니다.
○간사 서봉석   정회를 하고 유족회에서 명단 거기에 빠진 사람들을 확인하도록 하지요.
○조사반장 조종명   오늘 아침에도 금만쪽에서 오신 분들이 이런 노력을 하다가 지금 그 자료를 누가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지금까지 우리가 조사한 대로 남명선생 묘소밑에 많이 죽였다 그런 것도 자료가 나오는 대로 빨리 1년, 2년을 할 수도 없고 며칠까지 이런 정도를 마무리 지어주고 국회나 관계부처에 보낼 수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이 점을 생각하시고 유족을 조사하는데 확실히 해 주시고 당시 증언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나 장소나 이런 것도 아시는 대로, 자료를 보내주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어도 안되니까 그런 것이 있으면 참고해주시고 잠시 정회를 하겠습니다. 

(11시08분 회의중지)

(11시31분 회의계속) 
○조사반장 조종명   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유족명단은 오늘 하실 수 있는대로 보충을 하시고 내일 모레 단성도 명단을 조사하실 수 있으면 오늘 금만쪽에서 오신 분들이 노력을 하셔 가지고 단시일내 명단이 확보될 수 있도록 사망하신 분 명단, 인적사항 유족들이 어디 살고 계시며, 날짜가 얼마되고 직업도 있으면 좋고, 그런 것까지 되어서 조사하여 그분들이 어디가 세상을 버리셨는지는 몰라도 며칟날 어디에서 어떻게 해서 잡혀갔다. 뭣이라도 상세하게 알 수 있는데까지 좀더 자료를 항구적으로 그렇게 해주세요.
  그러면 향후 일정은 전문위원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하겠다 하는 것을.
○전문위원 송귀준   지금 이미 아까 서위원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지금 자료가 올라간다 해서 당장 국회가 해줄 것도 아니고 또 현재 국회가 선거에 들어가 버리면 새 국회가 서야 됩니다.  그리고 또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현재 국회에 탄원을 하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해서도 안되고.  적어도 서위원 욕심으로는 이 부분은 관련 시군하고 해야 됩니다.  함평이나 화순, 나주, 문경 이와 같이 우리와 유사한 시군과 연계해서 해보자 하는 것에 우리 서위원님 욕심을 가지고 계신데 그런 정도의 얘기이고 그래서 일단 가능하다면 인권단체의 도움도 받지 않겠느냐 이런 얘기입니다.  현실적으로 이런 사항이 산청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전국적으로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래서 아까 제가 말씀드린대로 우리군 의회는 그런 식으로 엮어 가지고 위워님들도 하고 있고 저도 그렇게 보좌를 하려고 합니다.  
  사실은 유족되시는 분 우리 위원님들도 정기회기 때는 일당이 나오는데 오늘같이 이렇게 하면 일당이 없습니다.  여비도 없고 일당도 없고 그래서 상당히 어렵습니다.  위원님들도 우리 그런 것을 이해해주시고 사실은 이 문제는 상당히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아주 대통령이 고도의 정치적인 판단을 해서 하여야 하고 그렇게 처리 해주었으면 좋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저희들 생각입니다. 
  그것도 역시 아까 말씀드린 대로 그 당시 가해자가 살아있습니다.  살아있든지 다 자손이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사회를 이루고있는 주류가 어떤 부분에서 지금 현재 어떤 의미에서 그 당시 학살되었던 유족이 세상의 주류가 아니고 그 당시 칼자루를 쥐고 있던 지역에서 세상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유족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쉽게 해결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  다만 우리의회 위원님들이 이렇게 해서라도 마무리를 지으려는 의도는 적어도 우리의회가 생기고 나서 그런 가슴에 맺힌 일들이 있는데 우리가 증언을 들어보고 우리 나름대로 노력은 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그러한 책임감과 결과적으로 자기를 뽑아준 분들에 대한 배려라고 그렇게 봅니다.  
  어떻게 보면 곤혹스럽고 어떻게 보면 이것이 잡히는 것도 없고 불확실한 것같이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거듭 부탁 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이 바로 거창양민학살사건과 같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제가 김빼는 말씀을 드려서 안되었습니다만 그러한 기대는 가지지 마시고 안되더라도 우리군 위원님들이 이번에 참여하신 삼장 조위원님, 서위원님, 부위원장님, 김희수위원님 고생하신 부분은 그렇게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간사 서봉석   지금 저희들 조사반이 구성되어 가지고 활동을 6개월로 처음에 잡았습니다마는 그 안에 정기회의가 상당히 오랜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만족할만한 조사활동을 해 주지 못한데 대해서는 유족들에게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참고로 2000년 4월6일까지는 조사반 활동의 만료기간입니다.  그러면 이후에 자료를 다시 정리를 해야 되고 아마 보고서 인쇄하기는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또 이것이 다음 국회인 16대국회에 청원을 할 때까지는 저희들이 쓸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위원들의 대외활동이나 유족들의 활동이 반영될 수 있는 그런 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족측에서는 늦어도 자료정리하는 것이 빠르게 마쳐주면 좋겠지만 자료 인쇄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 사이에 새로운 사실이 있으면 그것까지 해 주시고 저희들도 앞으로 그런 방법을  시나리오대로 그 이후에 좀 어려움이 있겠습니다마는 4월6일 끝나고도 혹은 보고서 작성이  끝나도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고 판단하지 말고 끊임없이 준비하거나 또는 타시군 유족 대표하고 교분을 나누어야 될 것 같고 아까도 말씀드렸던 천주교, 기독교, 불교 인권위에도 활동하시는 사심없는 분들하고 만나서 이 문제를 대통령 마음을 움직이기까지 끊임없이 노력해야 되기 때문에 새로운 2단계를 준비한다는 그런 마음으로 준비를 할 수 있어야 안되겠느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전체적으로 미진한 저희들 활동을 가슴아픈 가운데 지켜봐 주시고 협조해 주신데 대해서 감사드리고 끝으로 마지막 인사말씀을 조종명위원님께서 인사를 하겠습니다.
  오늘 4차 회의를 마치고 식사하시고 나서 여기에 관계되시는 최영렬면장님이나 구산업조합터에 사진을 하나 찍어야 되니까 식사를 마치고 나서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반장님께 마이크를 넘기겠습니다. 
○조사반장 조종명   오늘도 장시간 고생이 많았습니다.  여러 날로 고생을 계속 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고생이 계속 되겠습니다마는 어떻든간에 아실 수 있는데까지 충분한 조사가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을 해 주셔야겠고 우리 의회에서도 할 수 있는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의회만 절대로 믿지 말고 유족들이 괴로우시지만 힘 닿는데까지 계속 노력을 해주시기 바라며 제가 얘기 정리를 안 해도 지금까지 2분이 말씀을 드렸는데 더 이상 말씀을 안 드리겠습니다.  
  장시간 대단히 감사합니다.  한 분도 빠지지 마시고 기사식당으로 전부 가셔서 점식을 잡숩고 자로 나가서 사진을 찍을 분 몇 분은 사진기사와 참고로 사진을 찍고 식사를 하도록 합시다.  
○전문위원 송귀준   전문위원 사무실이 별도로 있으니까 꼭 필요하시면 몇분한테는 명함을 드렸습니다마는 일이 있으면 군청으로 돌리면 됩니다.  국회에서 가져온 자료는 대출은 곤란하고 제 사무실에 있으니까 보시고 싶은 분은 오셔서 보시도록 하십시오.  적어도 우리가 늦어도 마무리 지어야 되는 것이 7월10일 정기회의가 있습니다.  정기회의까지는 이건도 마무리되어야 되지 않겠느냐.  적어도 6월15일까지는 보고사항 작성은 마쳐야 될 것 같습니다. 
  다른 사항 있으면 저한테 연락주시면 되겠고, 여기 서위원님이나 조위원님을 통하셔도 가능합니다. 

(11시45분 산회)


경상남도 산청군의회 의원프로필

홍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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