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발달 역사

"우리나라 한의학의 기원은
단군 신화의 쑥과 마늘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이 되고 싶어 찾아온 호랑이와 곰에게 환웅이 단순한 마법을 부리지 않고 쑥과 마늘을 권했다는 이 신화를 보면 약재나 약학에 관한 한민족 고유의 전통이 이미 오랜 옛날부터 전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한민족 고유의 한의학은 삼국시대에 와서 한토의학(韓土醫學)과 불교의학의 전통 속에서 이론적 기틀이 세워지기에 이른다. 고구려 평원왕(561년) 때에는 중국으로부터 의학서가 전해졌으며, 백제시대에는 의학과 약학이 최초로 분화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백제시대에는 독자적인 백제 의학이 형성되어 '백제신집방'이라는 우리 민족 최초의 의서(醫書)가 편찬되기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한의학이 더욱 발전을 하는데 수-당의학과 인도 의술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으로 발전 할 수 있었다. 이런한 사실은 '신라법사방(新羅法師方)'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또한 통일신라시대에는 최초의 의사교육제도와 분과제도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고려 초기에는 당나라의 의학을 기초로 하여 아라비아인을 통해 서구와 남방의 의약품과 다양한 의학 지식이 전해지게 되었다. 이에 박차를 가하여 고려 중기에는 송(宋)나라 의학이 들어왔다. 이렇듯 각국에서 들어온 의학을 분석하여 후기에는 자주의학(自主醫學)으로 한의학이 자리잡게 되었다. 특히 병에 걸려도 치료를 받기 어려운 서민들을 위한 제도로 제위보(濟危寶),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 혜민국(惠民局)등이 설치되었으며, 이런 자주적인 분위기를 타고 한의학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현재 존재하고 있는 의서 중 가장 오래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을 편찬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태종 때 최초의 의녀(醫女)제도가 창시되었다.

세종때에는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의방유취(醫方類聚)'가 편집되었다. 조선 중기에는 일반인들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이 편찬되어 동양의학의 커다란 업적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또한 허임의 침구법과 사암도인의 새로운 침구보사법(鍼灸補瀉法)이 창시되기도 하였다.

그러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보다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아 실증적인 학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중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은 사람의 체질을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으로 나누어 각각의 체질에 맞게 약을 써야 한다는 사상의학(四象醫學)의 창시로서 우리나라 한의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와서는 한의학이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
일제가 강도 높은 정치적 규제를 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고 또 동시에 남북분단이라는 비극적 상황이 낳은 남한의 차별적인 의료정책 속에서도 한의학은 발전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 결과 1947년 동양의학관이 세워졌고, 1952년 한의사 제도가 부활되었으며 1955년에는 동양의학대학이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1952년에 설립된 사단법인 대한한의사협회와 전국의 11개 한의과대학(2006년 현재, 6년재)에서는 한의사와 한의학 및 한의약에 관련된 정책 및 학술연구를 계속적으로 하고 있고, 많은 학회활동과 국제의료봉사활동 등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2003년에는 한의학육성법이 제정되어 한의학이 한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으며, 대한한의사협회는 21세기를 주도할 수 있는 한의학 발전방안을 구상 및 추진하고 있다.

산청군 휴양관광지 내 허준 동상
산청군 휴양관광지 내 허준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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