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서

사의경험방

  • 의서명의방강요
  • 발행일자조선중기

상세내용

조선중기에 4명의 명의들의 경험처방과 당시 유행하던 유명처방을 모아 간행한 의방서.

1권 1책으로 된 이 책에는 서문과 발문이 없어 자세한 간행경위는 알수없고 줄여서 『경험방(經驗方)』이라고도 한다. 조선후기 가장 널리 보급된 의방서 중의 하나이다. 본문에 앞서 권두에 이석간(李碩幹), 채득기(蔡得己), 박렴(朴濂), 허임(許任) 등 4명의 이름과 본초(本草), 동의(東醫), 문견방(聞見方)이 차례로 나열되어 있다. 이 책의 ‘사의경험(四醫經驗)’이란 이상 4사람의 경험처방을 말한다. 이 책은 공동저자의 책이지만 그들이 직접 공동작업을 해서 집필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다만 당시의 시대적 요구에 따라 여러 명의들의 경험방과 기타 문헌들을 참작하여 종합적이면서도 실용적이고 간편한 처방서가 필요해서 어떤 사람이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4명의 의사들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석간은 문신 유성룡의 외조카로 조선중기에 활약한 이찬(1575-1654)이며 1632년에 인조의 병을 치료한 공으로 관직에 등용되어 공조좌랑, 군위현감을 지냈고 채득기는 조선 중기의학자로 충주출생, 호가 우담(雩潭), 학정(鶴汀)이다. 여러 학문에 통달하였고 병자호란때에는 소현세자를 수행하여 중국 심양(瀋陽)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부친 채유종(蔡有終)과 함께 『내침의선생안(內鍼醫先生案)』에 기록되어있다. 박렴은 호가 오한(悟漢)이나 자세한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허임은 생몰연대 및 자세한 행적은 불분명하지만 『침구경험방(鍼灸經驗方)』의 저자로 잘 알려져있고 허준(許浚)과 함께 내의원에서 근무하였다. 따라서 이 책은 이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그들의 제자 혹은 그들을 알고 있으며 의학에 조예가 있던 사람이 이들의 경험방을 모아 효종, 현종 년간에 간행한 것으로 여기진다.

이 책은 크고 작은 두가지 형태의 목판본 또는 목활자본이 있는데, 대략 대형 목판본은 조문수가 더 많고 출전표기가 잘 되어 있으며 체계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에 비해 袖珍本 형태의 소형 목판본은 분량이 훨씬 적고 출전이 생략되어 있어 시기적으로 좀더 뒤에 실용적인면을 강조하여 압축된 판본으로 보인다. 또한 이 책은 실용적인 가치가 높아 인쇄본보다는 대부분 필사본으로 더 많이 유포되었으며, 필사본은 작성자의 의도에 따라 내용 중 일부를 덧붙이거나 덜어낸 경우가 많다.

이 책의 본문에 앞서 실려있는 ‘약물명(藥物名)’에는 한글표기가 덧붙여있는데 초(草), 목(木), 금(禽), 수(獸), 과(果), 채(菜), 소(蔬), 수(水), 화(火), 충(蟲), 금(金), 인(人), 토(土), 석(石) 14개항목 300여종에 달하는 약재가 수록되어있다. 기록된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약재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어서 민간에서 활용하기 쉽도록 배려한 것이다. 본문은 두(頭), 이(耳), 목(目), 비(鼻), 구(口), 인후(咽喉)등 외형질환을 먼저 열거하였고 음식(飮食), 소갈(消渴), 창종(瘡腫) 등과 같은 잡병과 부인, 소아의 순으로 간명하게 설정되어있다. 치료법은 대개 두세 줄 이내의 간편한 것들로 되어있기 때문에 의약에 문외안인 사람들도 쉽게 골 라쓰기에 좋도록 구성되어있다. 또 병명에 따라서 간혹 한글로 설명을 붙여 풀이해 놓은 곳도 있는데 예를 들면 두정통(頭正痛)은‘온머리알 증’ 정통급편통(正痛及偏痛)은 ‘변두통이나 온두통’등과 같이 이해하기 쉽도록 한글로 간단히 설명을 달아놓았다. 본문에는 각 조문마다 마지막에 약칭을 사용하여 일일이 출전주기를 달아놓았기 때문에 원작자나 인용문헌을 확인해볼 수 있다.

이 책에 담겨진 경험처방 및 향약(鄕藥)은 위로는 고려말 조선초의 『동인경험방(東人經驗方)』이나 『본조경험방(本朝經驗方)』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 책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촌가구급방(村家救急方)』이나 『문견방(聞見方)』도 같은 맥락에서 쓰여진 저술로 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서 고려말 조선초의 자국산 약재 개발로 시작된 동의학(東醫學)의 독자성이 조선중기 이후 독자적인 경험의학으로 뿌리내리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