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서

수민묘전

  • 의서명의방강요
  • 저자정조
  • 발행일자조선시대(정조조)

상세내용

"정조는 등극 이전부터 의약에 관심이 많아 『동의보감(東醫寶鑑)』을 탐독하였으며 『군서표기(群書標記)』의 서문에는 정조가 선대왕인 영조의 병간호를 시중하기 위해 의약을 공부했다고 되어있다. 정조의 측근 신하였던 심상규(沈象奎)가 정조사후에 정조의 행실을 기록한 『천릉지문(遷陵誌文)』에는 "" 선왕(정조)께서는 10년을 병간호하시면서 ... 중략... 앉고 눕고하는 모든 기거를 몸소 다 보살폈으므로, 영조께서 왕세손이 너무 고달플까봐 혹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대신하게 했다가도 금방 짜증을 내시면서 ‘왕세손이 할 때마큼 내 몸이 편치 못하다’고 말씀하시곤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홍재전서(弘齋全書)」에 실린 『수민묘전(壽民妙詮)』의 서문에 의하면 정조는 동방풍속이 의학에 종사하는 것을 천하고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 말하고 의학 또한 유가덕목의 하나라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선대왕인 영조의 병간호를 위해 띠를 풀지 않았던 10년동안에 스스로 침구와 본초에 체득한 바 있었다고 하고 의약은 백성을 구제하는 일이라 스스로 의서를 쓴다고 되어있다.
『수민묘전』의 전체적인 내용은 『동의보감』의 내용을 요약 발췌한 것이다. 그래서 목차도 『동의보감』의 목차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동의보감』의 「내경편(內景篇)」이 이 책의 권1에 해당하고 「외형편(外形篇)」과 「잡병편(雜病篇)」의 권1의 내용이 권2에 해당한다. 원래는 4권4책이었으나 현존하는 것은 권1과 권2만 전해진다. 내용은 『동의보감』 각 항목의 내용에서 중요하고 핵심적인 의학이론 및 원칙적인 내용을 선별하여 기재하였고 처방이나 치법 등의 구체적인 의학적 내용은 인용되지 않았다. 이는 국정의 총책임자로서 의학의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고자하는 것으로서 서문에서 밝힌 정조의 의학연구의 목적에도 부합되는 것이다.
중국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에도 역대로 제왕이나 왕족이 의약에 밝고 또 의서를 써낸 경우는 드물지 않다. 역대의 제왕들이 모두 자신의 책임아래 의서를 편찬한 경우뿐 아니라 정조와 같이 제왕이 직접 의서를 써낸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조가 『의약론(醫藥論)』을 지었다고 되어있고 영조는 ‘참민소식(參民小識)’이라는 의약관련 시(詩)를 친필로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조의 경우처럼 10여년을 의학연구에 몰두하고 의서를 써낸 경우는 흔치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