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이야기

정취암

정취암

“아미타불의 광채가 닿은”
정취암 Sancheong Story

대성산 절벽에 지어진 정취암에서

바위 절벽에 제비집처럼 붙어 있는 암자, 정취암. 천년도 훨씬 더 지난 세월 동안 바위 보다 굳은 마음으로 기원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있는 곳. 암자 마당 앞에 숲이 바다를 이룬 풍경이 펼쳐진다. 일망무제의 풍경처럼 중생의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 주는 관음보살상의 온화한 미소를 본다. 부처님의 도를 모른다 해도 정취암에서 바라보는 자연의 느낌만으로도 마음이 정갈해진다.

정취암에서 꼭 봐야할 풍경
  • 정취암 조망 : 정취암에 올라 눈 아래로 펼쳐진 숲의 바다를 본다. 일출과 일몰 풍경도 아름답다.
  • 정취암 산신 탱화(문화재자료 제243호) : 호랑이를 타고 가는 산신이 그려져 있다. 조선 순조 때 그린 그림이다.
  • 정취암 목조관음보살좌상(문화재자료 제314호) : 원통보전에 모셔진 불상이다.
  • 석조 산신상 : 정취암 삼성각 뒤 기암절벽 세심대에 봉안한 석조산신이다.
정취암2
# Story 1

정취암, 기암절벽 풍경과 하나가 되다

깎아지른 바위절벽, 발 디딜 곳 없을 것 같은 곳에 암자가 있다. 바위와 어울린 나무들이 푸르게 빛나는 그곳, 정취암이다. 예전 같으면 약간의 산행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정취암까지 차가 올라간다. 정취암까지 이어진 도로를 올라가다 보면 정취암까지 걸어서 올라가는 길 입구가 있다.

그곳에서 20여 분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정취암에 이른다. 차로 계속 가려면 걸어서 올라가는 길 입구를 지나 산을 돌아 정취암 뒤편으로 가면 된다. 바위 절벽 좁은 공간에 자리한 정취암은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숲에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왕대와 노송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풍경에 소담한 사찰이 놓여 있다. 관세음보살상을 봉안한 원통보전에는 정취관세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관세음보살이란 세상 만민의 소원을 들어주고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보살이니, 정취암이 생긴 뒤 1000년도 훨씬 더 지난 세월 동안 쌓인 중생의 기원이 산이 되고 바다가 되고도 남았으리라. 지금도 소원을 비는 기도처로 이름 나 있는 정취암을 찾는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정취암 마당에 서면 푸른 숲의 바다를 볼 수 있다. 간절한 기도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관음보살의 마음이 그 풍경에도 깃들었나 보다. 일망무제의 풍경을 바라보는 여행자의 마음이 정갈해 진다. 숲의 바다에 길 하나가 구불거리며 흐른다. 숲과 길이 어울려 한가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 Story 2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의 점심시간

정취암은 의상대사가 건립했다. 신라 문무왕 6년(686년)에 동해에서 아미타불이 솟아올라 한 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또 한 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다. 이때 의상대사는 두 빛을 쫓아 금강산에는 원통암을 짓고 대성산에는 정취암을 건립한 것이다. 정취암 북쪽 약 4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율곡사가 있는데 율곡사는 원효대사가 651년에 창건했다. 30여 년 차이를 두고 창건된 두 절에는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에 관한 신비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율곡사에 거처하던 원효대사가 보리죽을 먹고 있는데 정취암에 있던 의상조사는 하늘에서 내려 준 공양을 받고 있었다. 하루는 원효대사가 정취암으로 놀러왔는데 점심시간이 되어 “오늘 나도 천공(하늘에서 준 점심 공양)을 받아 함께 먹을 수 있겠네”라고 하면서 점심 공양을 기다리는 데 때가 지나도 하늘에서 천녀(天女)가 내려오지 않자 원효대사는 그냥 돌아갔다.

원효대가가 돌아가자 그때서야 천녀가 내려왔다. 의상조사가 “왜 이제 오냐”고 묻자 천녀는 “원효대사를 옹위하는 팔부신장이 길을 가로막아서 정취암으로 올 수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이에 의상조사는 자신의 도량이 원효대사에게 미치지 못함을 깨닫고 그 다음부터 천공을 사양했다고 전해진다.

정취관음보살상
# Story 3

정취암 이야기

정취암은 정취관음보살상을 본존불로 봉안하고 있는 한국유일의 사찰이다. 신라 헌강왕 2년(858년) 굴산 범일선사가 낙산사에 봉안했던 정취관음보살상을 고려 고종 41년(1254년)에 명주성이 몽고병에 함락될 때 야별초 10인과 사노인 걸승이 땅속에 묻어 난을 무사히 피하게 되었다. 그 후 기림사 주지스님 각유선사가 이 정취보살상은 국가의 신보이니 궁궐에 모실 것을 왕에게 아뢰어 왕의 명을 받아 궁궐에 모시게 되었다. 고려 공민왕 3년(1354년)에 화경, 경신 두 거사가 정취사를 중건한 후 궁궐에 봉안되어 있던 정취보살상을 정취사로 옮겨 봉안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