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탐방

의도 임걸용

산청에 얽힌 전설ㆍ설화이야기

의도 임걸용

시천면 내공리 정각사 자리는 수백년 전에 삼남대적으로 유명한 임걸룡이 출생한 곳이라 한다. 전하는 바로는 이 자리에 엿장수를 하는 한 부부가 한 칸 집을 짓고 살다가 임걸룡을 낳았는데 임걸룡이 어렸을 때에는 업고 다녔지만 4-5세가 되자 데리고 다닐 형편이 못되어 부득이 집에 두고 장사를 나갔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선반에 얹어둔 엿이 십여개씩 줄어드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예사로 알았지만 시일이 갈수록 만들어 둔 엿이 자꾸 줄어드니 임걸룡의 모친은 하도 이상해서 엿을 가져가는 도둑을 잡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하루는 평시와 같이 장사를 가는 척하고 숨어서 살펴보고 있었다.

그랬더니 얼마 후 임걸룡이 문을 열고 나오더니 사방을 한눈으로 둘러보고는 인적이 없음을 단정하고 주머니에서 엽전 한 닢을 껴내어 화로 불에 달군 후 실을 엽전 구멍에 단단히 매어서 엿을 놓아 둔 그릇에 던져두었다가 잠시 후 실끈을 잡아당기니 엽전에 녹아 붙은 엿가락이 실끈을 따라 내려오는 것이었다. 이 비범한 지례를 지켜 본 어머니의 생각으로는 그들의 처지로 볼 때 자기 아들이 도적보다 큰 인물로 발전할 수 없음을 알고는 성을 내어 꾸짖으며 “요놈의 자식이 방 아랫목에서 밥먹고 윗목에다 똥싸면서 도둑질 해 먹는 것이냐”고 호통을 치며 “앞으로 큰 도둑이 되겠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있던 임걸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어머니가 가르쳐 준대로 하겠다고 하였다.

그후 자라면서 지략이 비범한 임걸룡은 무예를 즐겨서 말타기와 활쏘기를 좋아했으며 때맞춰 정각사 동쪽에 있는 쥐설이라고 하는 묘 옆에서 준마 한 필을 얻게 되었다. 현재 정각사 입구에 석주가 서 있는데 임걸룡이 말을 매었던 돌이라고 한다. 그후 마근담 위쪽 봉우리에 산채를 마련하여 훈련을 시키고 활동하다가 산청 새고개의 길가에 있는 석굴에 숨어들어 삼남대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 새고개는 지금의 신안면 외송리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석굴도 그대로 남아있다. 임걸룡은 팔도의 행상을 상대로 물품을 털었는데 전량을 탈취하는 것이 아니고 물품의 일부분을 얻어 모아서 부하를 먹이고 남은 것으로는 고장에 빈민을 구제하였다는 것이다.

이 길목을 지나가는 등짐장수는 미리 물품의 일부분을 별도로 갖고 오다가 굴 앞에 이르러 던져주고 갔다고 한다. 한때는 지금의 차황면 철수에 있는 호렴산에도 숨어 살았다는 굴이 남아있다. 그 당시 일걸룡이 출생한 내공의 지리에 대해서 풍수설에 청룡단두혈(靑龍斷頭穴)이라하여 속인이 살면 대적이 나고 공당(公堂)이 서면 길지(吉地)라 하였는데 현재 정각사가 그 자리에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