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산청 척화비

  • 산청 척화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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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52220]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꽃봉산로79번길 43
  • 대표전화055-970-6441~3
  • 부대편의시설

상세정보

  • 관리부서산청군 문화관광과/산청초등학교
  • 대표전화/팩스TEL 055-970-6441~3 / FAX 055-970-6409
  • 담당자문화재담당자
  • 담당자연락처055-970-6441~3

요약정보

척화비는 조선 고종 때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흥선대원군이 서양세력을 배척하고 이를 온 백성에게 일깨워 주고자 전국의 중요 지역에 세워두도록 한 것이다.

개요

산청 척화비 (山淸斥和碑)

척화비는 조선 고종 때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흥선대원군이 서양세력을 배척하고 이를 온 백성에게 일깨워 주고자 전국의 중요 지역에 세워두도록 한 것이다. 

비는 거북을 본뜬 듯한 단조로운 모습의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웠고, 비의 윗변 양쪽을 비스듬히 다듬었다. 

고종 8년(1871)에 세웠으나, 한일합방 당시 일본인에 의해 두 조각으로 갈라져 땅에 묻혀 있었던 것을, 산청초등학교를 지을 때 발견하여 학교 교정에 복원해 놓았다.

[전문설명]
이 비석은 조선조 고종때 대원군(大院君)이 병인양요(丙寅洋擾)와 신미양요(辛未洋擾)에 승리(勝利)한 이후 전국 각지에 건립토록하여 서양(西洋)과의 화친(和親)을 배척(排斥)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 쇄국정신(鎖國精神)을 드높이는데 활용(活用)한 것이다. 산청 척화비는 고종 8년(서기1871년) 사람의 왕래가 많은 환아정(煥아亭)뜰에 깊이 135㎝, 너비 45㎝, 두께 25.5㎝의 크기로 세워졌으나 한일합방 당시 일본인이 들어와 두 조각으로 깨뜨려 땅에 묻었던 것인데, 산청 국민학교 교사신축(校舍新築)시 발견되어 현위치에 복원(復元)되었다.

문화재지정 현황

문화재지정 현황
문화재구분 지정번호 지정일 제작연대 시대
도지정문화재 294호 1993.12.27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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