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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문익점 효자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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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문익점 효자비
  • 주소

    경남 산청군 단성면 목화로 887

  • 대표전화

    055-970-6441

상세설명

  • 관리부서 : 산청군 문화관광과/남평문씨문중
  • 대표전화/팩스 : TEL 055-970-6441 / FAX 055-970-6409

요약정보

문익점 선생이 살았던 마을에 서 있는 비로, 선생의 효행을 기리고 있다.

개요

산청 문익점 효자비 (山淸 文益漸 孝子碑)

문익점 선생이 살았던 마을에 서 있는 비로, 선생의 효행을 기리고 있다.

삼우당 문익점(1329∼1398)은 고려시대 후기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중국에서 목화씨를 가져온 것으로도 잘 알려진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모친이 돌아가시자 묘곁에서 움막을 짓고 살았다. 당시는 왜적의 침입이 잦아 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노략질이 심하여 모두 피난을 가고 있었는데, 그 만이 홀로 평상시와 같이 곡을 하고 있었다. 왜적도 그의 이러한 효성에 감동하여 나무를 다듬어 ‘효자를 해치지 말라’라고 써서 세워 놓도록 하니, 그 때부터 이 지역이 평안하였다 한다. 그 후 조정에서는 고려 우왕 9년(1383) 그에게 표창을 내리면서, 마을을 ‘효자리’라 이름하도록 하였다.

비각안에 모셔둔 비는 낮은 사각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모습으로, 비몸의 윗변은 살짝 둥글게 다듬었다.
전문설명
이 비석(碑石)은 가로 160㎝, 세로 50㎝의 돌로 된 비(碑)이다.

비가 세워진 마을은 원래 삼우당 문익점(三憂堂 文益漸)선생이 살던 곳인데 그의 효성이 지극하여 모친이 돌아가신 뒤에 시묘(侍墓)살이를 하고 있을 때에 왜적이 침입해 와서 지나는 곳마다 분탕질이 심하여 모두 피난을 갔는데도 오직 선생은 홀로 여막(廬幕)을 지키고 평상시와 같이 곡을 하고 있었더니 흉악한 왜적도 나무를 다듬어 "효자를 해치지 말라"고 써서 세우므로 근처가 모두 평안하였다고 하며, 그뒤 고려 우왕 9년(서기 1383년)에 조정에 정려(旌閭)를 내리면서 이 마을을 효자리(孝子理)라고 명명(命名)하였다.

문화재지정 현황

문화재지정 현황 테이블 - 문화재구분, 지정번호, 지정일, 제작연대, 시대 정보 제공
문화재구분 지정번호 지정일 제작연대 시대
문화재자료 52호 1983.8.6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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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시는길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단성IC→지리산 방향(국도 20호)→단성면 사월리→목면시배유배지(삼우당효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