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산청 문익점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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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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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정보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묘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문익점 선생의 공적을 적고 있다.

개요

산청 문익점 신도비 (山淸 文益漸 神道碑)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묘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문익점 선생의 공적을 적고 있다. 



문익점(1329∼1398)은 공민왕 9년(1360) 과거에 급제하여 김해부사록과 순유박사 등을 지내었다. 공민왕 12년(1363)에는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에 간 일이 있었는데, 당시 원나라에 와 있던 고려사람 최유가 충선왕의 셋째 아들 덕흥군을 왕으로 추대하고자 공민왕을 몰아내려 하였다가 최영에게 패한 일이 생겨, 문익점도 그 누명을 쓰고 귀국과 동시에 관직을 삭탈 당하였다. 귀국할 때 붓뚜껑 속에 목화 몇 송이를 숨겨와 정천익과 함께 시험재배를 하였으며, 3년간의 노력 끝에 성공하여 전국에 퍼지게 하였다. 훗날 조식은 그의 이러한 공로를 기리어 시를 지어 찬양하기도 하였다. 



비는 조선 순조 34년(1834)에 세운 것으로, 강화도 물 가운데에서 돌을 캐어 등짐으로 3년여를 옮긴 후 마을의 도로변에 세워놓은 것이라 한다. 그 후 비각은 불에 타 없어지고, 1943년 조선총독부와 경상남도청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전문설명
삼우당 문익점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순조 34년(서기 1834년)에 경기도의 강화도 물가운데서 돌을 캐어 각 고을의 성주(城主)들이 협력하여 등짐으로 3년여를 운반하여 마을의 도로변에 세웠던 것을 서기 1935년에 실화(失火)로 비각(碑閣)이 소실되었다.



그뒤 서기 1943년에 당시의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와 경상남도에서 현재의 장소로 옮겨 세웠다.

문화재지정 현황

문화재지정 현황
문화재구분 지정번호 지정일 제작연대 시대
도지정문화재 1983.8.6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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