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바로 알기

  • 1951
    2.05
    한국전쟁이 일어나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육군11사단장 최덕신, 9연대장 오익경, 3대대장 한동석)이 실시
    2.06
    오전 11시 금서면 수철리에 동 3대대 병력이 이동해 와 주둔하고 작전 준비를 하기 시작
    2.07
    오전 6시 금서면 가현에 도착, 주민 123명을 학살하고 오전 9시경 방곡에 도착, 주민 212명을 학살, 오후 1시 30분경 함양군 휴천면 점촌에 도착 주민 60명을 학살하고 오후 4시 30분경 함양군 유림면 서주리에 도착 주민 310명을 학살 (인원은 신고된 숫자임)
  • 1954
    4. 20
    방곡지역 유족들이 뜻을 모아 "동심계"를 조직하고 억울하게 죽은 양민들을 추모하기 시작
  • 1960
    5. 22
    제35회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당 박상길 의원의 제안으로 산청 함양사건 진상조사 결의안이 채택되고, 동년 10월 이후 경상남도 도의회 민치재 의원이 산청 함양사건에 대한 진상을 의회 활동과 대언론 활동을 통해 밝히는 노력을 함
  • 1983
    3
    유족들과 지역의 강정희, 곽덕경 등을 비롯한 뜻있는 이들이 산청함양사건의 희생자들을 위한 명예회복의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
  • 1989
    4. 20
    가현, 방곡, 점촌, 서주지역 유족들이 산청함양사건 희생자 유족회 (1대 회장 전상근, 2대 회장 이용효, 3대 회장 김성곤, 4대 회장 정재원)를 구성하고 국회 국정감사시 경상남도를 방문한 내무소위원회 소속 정상용 국회의원의 의제 채택으로 유족회 방청아래 강정희, 전상근씨 등이 산청함양사건에 대해 증언
  • 1991
    5. 9
    유족대표 및 주민대표가 국회를 방문, 산청출신 국회의원 6명에게 자료 제공하고 명예회복을 위해 활동해 주기를 요청하다. 이때부터 권익현 의원이 활동하기 시작하다.
  • 1993
    5
    산청군 의회에서 강정희 의원 주도로 산청함양사건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결의문을 채택하다.
    10.18
    유족 130명이 전세버스로 상경하여 민주자유당사, KBS, MBC 앞에서 합동 모의 장례식을 거행하고 이 후 몇차례 상경 투쟁하다.
    이 시기에 민관식씨 등 출향인사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다.
  • 1996
    1.05
    이강두 의원이 대표 발의하여 통과된 거창사건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공포
  • 1998
    2.17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 심의 위원회에서 사망자 및 유족이 결정. 이 후 이강두 의원은 보상법 제정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다.
  • 1999
    1. 14
    산청, 함양사건 희생자 합동묘역 조성사업 설계 용역비 예산이 확보되어 2001년 11월 9일 위령탑 현상공모 작품을 심사하고 11월 10일 합동묘역사업 시공업체를 확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