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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수호
제목 산청 함양 사건 중 서주리에서 학살대상 자를 지명한 사람
내용 산청 함양,거창 사건에서 함양군 유림면 서주리 학살 현장에서
등 뒤에서 학살 대상지를 지목한 양 재문

유족회 이사 민 수호


1951년 2월 7일(정월 초 이튿 날)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의 작전 명령은 <견벽청야> 작명 제5호이다.
이미 천하가 다 아는 검증, 확인된 산청 함양 , 거창의 양민학살 군사 작전 이였다.

산청 함양 사건 추모공원에서 방문 참배객의 요청이 있으면 2층 영상 실에서 누구나
< 견벽 청야> 의 기록 영화를 시청 할 수가 있다. 소요 시간은 15분 정도이고 이해를 돕는
해설(해설자 민수호) 포함 20여분이면 68년 전으로 거슬러가 학살참상의 현장을 영상으로 볼수가 있다.
참고로 필자의 조부 민 중혁은 이 장소에서 억울한 희생을 당하였다.

2018년 12월 29일 무술년 한해도 저물어 가는데 11시경 함양군 함양읍에 거주 하시는 필자의 금서초등학교 5회 선배이고,(만77세) 주상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할아버지 민봉혁의 서당에서 <한문 秀 제자>인 김광수 님과 지인 정명섭, 노창섭 회장님과 동행 하여 오셨다.
안내 해설 소에서 준비해 오신 동강 <순두부>로 점심을 때우며 서주리 사건에 대한 당시 9살의 나이에 보고 듣고 체험한 일을 생생히 기억하며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비화를 서슴없이 이어 나갔다.
필자는 이 사건 당시 생후 10개월의 갓난 아이였으니 귀를 쫑곳하며 들을 수가 있었다.

김광수 선배님은 독학으로 머리가 천재적이고 할아버지의 한문 명심보관, 소학, 대학을 통달하였음은 물론이고 현재 함양군에서 한문에 관한한 선배님을 능가할 분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수 많은 이야기를 생략하고 이 글을 쓰는 목적은 1951년 2월 7일 경남 함양군 유림면 서주리 학살 현장의 한 부분이라도 최초의 생생한 증언을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함이다.

1.증언자: 김광수(실제 42년생 77살, 당시 9세)
2.증언 장소: 추모공원 안내 해설소
3.참석자: 민수호, 정명섭, 노창섭
4.주요 증언 (이야기 형식)

0.당시 1951년 2월 7일 정월 초 2일 <김광수씨>의 거주지는 금서면 상촌 마을 이였으며 서주마을에는 수 천명의 인원(자혜, 주상, 화산, 화계. 함양군의 손곡,지곡마을) 집결하며 이동하였고 서로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엄청난 사람들이 모였으며, 군인들은 세밀한 감시도 없어 보였고, 한줄로 서서 기다리고 분류하는 어수선한 상황 이였다.

0. 양민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것은 이때 뒤 돌아서서 빠져 나가도 아무도 제지하거나 간섭할 사람도 없어보였고, 그러니 완전히 순진무구한 양민으로 말 할 수 있다.
0.자기들(양민) 스스로 줄서면 군인이 앞에서 눈감고 있으라고 하니 눈감고 기약 없이 서있으니 얼마나 추운 날씨인데 궁금하여 눈을 뜨면 바로 다른 줄로 세우고 하였으며,
줄 세운 등 뒤에서는 함양군 유림면 손곡마을 출신 <양재문>이라는 사람은 당시 특무대라는
완정을 차고 군인들의 앞잡이 즉 손가락으로 지목 하면 군인은 그 사람을 따로 불러내 학살 자 대열에 세우고, 세우고, 세우고 --

(사전에 학살자 수를 정해두고 이 숫자를 채우기 위해, 필자가 알고있는 작명5호에 의함)

그러니까 군인들이 각 개인별 성분을 알도리가 없으니, 오직 손곡마을의 특무대 완장을 찬
<양재문>이라는 자기 개인의 생각에 따른 무고한 양민의 생명이 학살된 결과를 가져왔다.
다시 말해 설사 통비분자 활동을 한 자들이 있었다면 이미 여기 와서 줄서서 기다릴 리가 없고, 진주 부산 등 멀리 도망을 가버리는 것이 상식이 아니겠는가.

0.자기가 죽을 줄도 모르고 스스로 대열에 눈을 감고 서있었고, 대열에서 눈을 뜬 사람은 학살 대상자로 지목하는, 눈뜬 사람은 <양재문>을 알게 되니까 후일이 두려우니까 죽이는 학살대열에 합류시킨 것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 이렇게 봐야 할 것이다.

0.<양재문>이라는 사람을 위와 같이 지목하는 또 다른 증언 도 있었다
산청군 모 面에서 이발업을 하는 모씨, 당시 7살의 나이에 서주 마을에서 살았으며 학살 현장을 똑똑히 기억하며 <양재문>이 등 뒤에서 학살대상자를 지명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2017년 4월경), 또 다른 증언은 유족회 모 이사 증언 등 ..

결론적으로 같은 지역에 살았으면서 수 많은 남의 목숨을 담보로 무슨 이득을 얻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양재문> 이라는 사람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행위를 하였음은 명확하다.

역사는 이렇게 사실이 살아서 흘러가고 있다.

<양민> : 양민이라는 말은 순박 순진 하고 농사일만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민간인> : 민간인 이라는 말은 양민뿐만 아니라 똑똑한 사람, 공부를 많이 한 사람,
자기주장이 있는 사람도 포함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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